가족회사인 비상장사가 지주사의 지분을 확대해 사실상의 지주사 역할을 함으로써 오너 2세로 경영 승계를 쉽게하는 방식이 패션업계의 ‘승계 패턴’으로 확산되는 것일까. 지난해 영원무역이 비상장 지주사 YMSA를 활용해 성래은 부회장에게 지분 승계를 마친데 이어 최근 F&F홀딩스도 비상장사인 에프앤코가 지주사 지분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어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업계에선 최근 F&F그룹 지주사인 F&F홀딩스가 F&F 주식을 잇달아 사들이며 지배력을 넓히는 동시에 , 김창수 회장의 아들인 김승범 대표의 비상장사인 에프앤코가 F&F홀딩스 지분을 늘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비상장사인 에프앤코가 지주사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 그룹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올라서게 함으로써 승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이다.
F&F홀딩스는 지난해부터 F&F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한 달 동안 13차례에 걸쳐 총 43만1780주를 취득했으며, 올해 들어 2월에도 4회에 걸쳐 5만4000주를 사들인 것을 비롯해 이달 초 또 2만주를 장내 매수 했다.
F&F홀딩스가 보유한 F&F의 지분은 2022년 말 30.54%에서 지난해 말 31.67%, 이달 들어 33.11%까지 늘었다. 김 회장 지분 23%를 포함한 F&F홀딩스와 특별관계인의 F&F 지분 합계는 61.94%이다.
지주사인 F&F홀딩스의 지분은 김 회장이 62.84%, 부인 홍수정씨가 7.57%, 장남 김승범 F&F 디지털 본부 총괄상무 겸 에프앤코 대표가 6.7%, 차남 김태영 팀장이 6.13%, 에프앤코가 4.84% 등 전체 지분의 91.71%를 오너 일가와 특별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100% 자회사였던 비상장 에프앤코가 갑자기 지주사 F&F홀딩스의 주주로 등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김 회장이 보유한 F&F홀딩스 지분 중 2.22%, 1.04%를 에프앤코에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또 올해 3월 F&F홀딩스 지분 1.58%를 추가로 넘겼다.
에프앤코는 김 회장의 장남이 최근 대표로 승진해 재직하고 있는 비상장 화장품 제조업체이다.
브랜드 ‘바닐라코’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 F&F의 100% 자회사로 출범했지만 2009년 김 회장이 전체 지분을 24억원에 매수하면서 가족회사가 됐으며, 현재 김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88.96%로 되어 있다. F&F가 에프앤코를 매각할 당시에도 알짜사업을 김 회장이 가져갔다는 논란이 있었다.
에프앤코는 이후 중국 수혜에 힘입어 급속 성장했다. 10년여 만에 매출은 3배, 영업이익은 10배를 넘는 괄목할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도 455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선 에프앤코가 F&F홀딩스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 장기적으로 ‘에프앤코→F&F홀딩스→F&F’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지분 증여 등 승계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에프앤코가 지주사의 최대주주가 되는게 승계에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장사의 지분을 물려받는 것보다 비상장사 지분을 넘겨받는게 증여세 등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다.
특히 업계에선 F&F홀딩스가 지난해 영원무역그룹의 경영승계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영원무역그룹은 성기학 회장이 지주사 영원무역홀딩스의 지분 29%를 보유한 비상장사 YMSA의 지분 50.01%를 딸에게 넘겨주면서 사실상 승계를 마쳤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 납부를 위해 부당 내부거래 등 꼼수 의혹도 있었지만, 지주사의 최대주주가 비상장사였기에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F&F홀딩스의 경영승계는 아직 급한 상황은 아니다. 김 회장이 60대 중반인데다 장남과 차남도 1987, 1993년생으로 경영승계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업계에선 에프앤코가 앞으로도 F&F홀딩스 지분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F&F홀딩스의 F&F 지분 매집도 그 연장선으로 본다.
유사 시 비상장사 에프앤코를 증여하면 탄탄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승계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승계 재원마련 작업도 장기적 안목에서 진행되고 있다. F&F홀딩스는 주주친화, 주가 부양책을 내세워 주식 매집을 통해 오너 일가의 지분을 늘리고 배당을 확대하고 있다.
F&F는 지난 2월 중장기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2026년까지 매년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현금배당과 자사주 취득에 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런 행보가 투자자들의 불신을 불러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너 2세가 지주사의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쉽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베일에 가려진 비상장사를 이용해 지배력을 높이는 게 자칫 편법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승계 과정에서도 불투명한 거래 등 잡음과 의혹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F&F그룹이 사실상 승계시계를 가동한 만큼 앞으로의 F&F홀딩스의 주가 흐름과 에프앤코의 F&F홀딩스 지분 변동 추이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회사였던 에프엔코가 지주회사인 F&F홀딩스의 지주 역할을 하기 위한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이다.